EBS 감정시대제작팀이 만든 『감정시대』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기우 씨의 아버지 이민의 씨는 새해를 맞아 예순이 되었다. 그의 직업은 대리 운전기사다. 사람들이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에 그의 업무는 시작된다. 민의 씨는 언제 올지 모르는 콜을 기다리면서 매일 가로등 아래서 휴대폰의 잔여 배터리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광주의 밤거리를 서성인다. 콜 한 건당 대략 1만 원을 받고 수수료를 떼고 나면 7천 원 정도가 남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루에 많아야 6만 원 정도를 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새벽 2시경, 하루에 대여섯 시간은 걸어야 하는 대리 운전 일이 이제는 힘에 부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민의 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휴대폰에 저장해둔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 그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1983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한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가정도 꾸렸다. 곧 아들 둘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직장을 다녔다. 성실하게 할 일만 하면 차곡차곡 승진하고 적당한 나이에 퇴직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 “필요하면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많이 하고 아무 걱정이 없었죠.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직장이었으니까 미래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평범하지만 안정된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처음 일이 터졌을 때는 전혀 몰랐죠.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힘든 상황이 됐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 마흔에 실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식료품 회사, 방문 판매, 택시 운전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무너진 가족의 삶은 쉽게 복원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만큼 착실하게 보상이 주어졌던 삶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 속 가족사진을 보는 동안에 불안한 마음을 잊어보려 해도 금세 ‘이대로 괜찮을까, 무엇이 부족한 걸까, 벌써 힘에 부치는 이 일을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진다. 대리 운전 손님으로 아들 또래를 만날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 변변히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혼자 힘으로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 몰두하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뒷바라지하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기만 하다. 이렇게 실직은 가족이 탄 배를 난파시켰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부서진 배의 조각들을 부표처럼 움켜쥔 채 이 사회의 불안 속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떠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감정이다. 기쁨, 슬픔, 즐거움, 우울, 후회, 불안, 절망…….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기분이 좋아서 웃다가도 갑자기 짜증이 나기도 하고, 슬퍼서 우울하다가도 좋은 일이 생기면 다시 웃기도 한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 감정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감정은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한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그러다 단 하나의 계기만으로도 폭발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게다가 감정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감정, 사회적 감정이라는 것도 있다. 사회적 감정은 개인적 감정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적 감정 역시 개인적 감정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 쌓여 가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에서 힘들지 않은 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소, 시간, 내용,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힘든 일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수없이 일어납니다. 좌절감과 불안감, 상실감과 고립감, 모멸감과 죄책감 등 뒤엉킨 감정들은 때론 무섭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적 파괴는 해결되지 못한 내면의 감정들이 표출된 증거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얻을 수 있을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내 안의 아픔을 치유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안겨줍니다.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기도 합니다. 믿음의 힘, 그것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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